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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157회 작성일 10-12-1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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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등을 밝힌다’는 의미의 연등(燃燈)은 부처님을 위해 등을 밝혀 그 공덕을 다하였다는 옛 경전의 내용으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불교의식이다.

등을 밝히는 행위는 향을 태우거나 부처님께 좋은 차, 꽃을 공양하는 등과 같이 부처님께 경외감을 표시하고 그 행위로 하여금 공덕을 쌓고자하는 불교의식의 하나로 발전된 것이다.

5세기 중국의 위(魏)나라 때 지어진『현우경賢愚經)』「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는‘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그녀의 모든 재산을 바쳐 산 기름으로 부처님께 공양한 등이 아침이 되어도 꺼지지 않고 끝까지 밝게 빛났다고 한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이 여인은 등불공양의 공덕(功德)으로 성불(成佛)할 것이다." 라는 말씀과 함께 그녀에게 수기(授記)를 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등을 공양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의 연등의 역사를 찾아보면, 신라 경문왕(景文王) 6년(866), 진성여왕(眞聖女王) 4년(890) 각각 정월(正月) 15일에 황룡사(黃龍寺)로 행차하는 중, 연등을 관람하였다는 간등(看燈) 기록이 있다. 또한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부터 행해졌던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가 국가의 주관으로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연등회는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2대 명절로 정착되었으며 연등도감(燃燈都監)과 팔관보(八關寶)라는 행사주관기구를 두어 주관하였으며 음력 정월 보름이나 2월 보름에 국왕과 온 백성이 풍년을 기원하며 궁궐부터 시골까지 갖가지 화려한 등을 밝히고 잔치를 열고 가무를 즐겼다.

고려 의종(1147-1170)때 백선연이 사월 초파일에 연등회를 시행하였으며, 고종32년(1245)에 최이에 의해 연등행사를 초파일에 시행한 것이 오늘날 사월초파일 연등회에 이르고 있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관청중심의 행사는 중지되었으나 민간에서는 민속행사로 남아 세시풍속으로 전승되었다. 초파일에 앞서서 등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대에 매달아 기를 만들어 들고 장안을 돌아다니며 쌀이나 돈을 구하여 등 만드는 비용으로 쓰는 호기놀이가 성행하였고 초파일이 되면 집집마다 등대를 높이 세우고 소원하는 등을 만들어 밝혔다. 밤이 되면 장안의 남녀들이 몰려나와 등을 구경하는 관등놀이를 즐겼으며 통금이 해제되는 날이기도 했다. 1955년의 조계사를 중심으로 시내를 도는 제등행렬을 시작으로 지금은 축제의 일환이자 연등회 전통의 보전을 위한 연등축제가 매해 열리고 있다.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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